금투세 폐지 | 4년 논란 끝에 막내린 정책의 전말
금투세 폐지
4년 논란 끝에 막내린 정책의 전말

한국 금융세제사에 전례 없는 기록이 남았다. 금융투자소득세가 시행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완전히 폐지된 것이다. 2020년 여야 합의로 도입이 결정된 지 4년 만에 한 번도 시행되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24년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204명, 반대 33명, 기권 38명으로 폐지 법안이 통과됐다. 이것이 바로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정책의 일관성 따위는 선거를 앞둔 정치적 계산 앞에서 무너져버렸다.
금투세란 무엇이었나
금융투자소득세는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얻은 수익에 포괄적으로 과세하는 제도였다. 핵심은 간단했다. 돈을 벌면 세금을 내는 것이다.
과세 기준과 세율:
국내 주식: 연간 수익 5,000만원 초과분에 과세 해외 주식·채권·펀드: 연간 수익 250만원 초과분에 과세 세율: 3억원 이하 22%, 3억원 초과 27.5% (지방소득세 포함) 손실 이월공제: 5년간 허용
이는 현행 세제와 달리 모든 금융투자 소득을 통합하여 손익통산이 가능하고, 손실 발생 시 5년까지 이월공제를 받을 수 있는 체계였다. 합리적인 세제였다는 얘기다.
4년간의 우여곡절
도입 배경과 초기 계획
금투세는 원래 문재인 정부의 ‘자본시장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2020년 12월 말 여야 합의로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2023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도입 취지:
• 금융상품별로 다른 세율이 적용되던 불합리한 과세체계 정비
• 투자 손실과 이익의 합산 과세로 조세정의 실현
• 자본시장 선진화 및 투명성 제고
첫 번째 유예와 정치적 계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 경제정책방향에서 금투세를 2년 유예하겠다고 밝혔다. 시행 시기가 2025년 1월로 미뤄진 것이다. 이미 이때부터 정책의 일관성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2024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거래소 신년 개장식에서 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했다. 이후 정부·여당은 일관되게 폐지를 주장했다.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 정책의 전형이었다.
찬반 논리의 격돌
폐지 찬성론의 주장
증시 활성화 효과를 내세웠다. 금투세 시행 시 ‘큰손’ 투자자들의 해외 이탈 우려, 국내 증시 위축 방지 필요, 개인투자자 1,400만 명의 피해 예방이라는 논리였다.
시장 불확실성 해소도 주요 논거였다. 제도 시행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폐지 반대론의 주장
조세정의 원칙 훼손이 핵심 논거였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기본 원칙 위배, 근로소득자는 세금을 내는데 금융투자소득은 면세하는 불공정이라는 지적이었다.
세수 감소와 재정 부담도 심각한 문제였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5-2027년 3년간 4조328억원 세수 증가 기대효과를 상실하게 된다. 연속된 세수펑크 상황에서 추가 세수원을 포기한 것이다.
전문가들의 엇갈린 평가
한국경제학회가 소속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금투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80%에 이르렀다. 반대로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20%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명확했다. 도입이 맞다는 것이다.
최한수 경북대 교수는 “집권 시 각종 개혁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사회적 반발과 갈등을 조정하고 합의를 끌어낼 역량이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정곡을 찌른 지적이다.
해외 사례와 비교
미국은 자본이득에 대해 보유기간에 따라 차등 과세한다. 단기 10-37%, 장기 0-20%다. 일본은 1989년 도입 성공사례로 20.315% 세율을 적용하며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했다. 영국·독일도 각각 10-20%, 26.375% 세율로 자본이득에 과세한다.
선진국들은 이미 하고 있는 일이다. 반면 대만은 1988년 도입했다가 주가 급락으로 1989년 폐지한 실패 사례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성공사례가 더 주목받는다.
증권거래세 인하는 유지
금투세는 폐지됐지만, 금투세 도입을 전제로 인하된 증권거래세는 예정대로 인하된다. 2025년 1월 1일부터 코스피는 기존 0.18%에서 농특세 0.15%만 부과되고, 코스닥은 기존 0.18%에서 0.15%로 인하된다.
이것이 바로 모순이다. 세수를 늘리려던 금투세는 폐지하면서, 세수를 줄이는 증권거래세 인하는 그대로 진행한다. 정부는 세수 감소 부담을 떠안게 됐다.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증권거래세율 인하로 인한 세수 감소 규모는 연간 7천억원에서 2조2천억원에 달한다.
앞으로의 과제와 전망
금투세 폐지로 예상 세수 효과(연간 1조7천억원4조원)를 포기하게 되면서, 연속된 세수펑크 상황에 추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재정 건전성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민주당은 금투세 폐지만 선언할 게 아니라, 앞으로 자산 과세를 어떻게 해나갈 것이냐란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며 보완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4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한 번도 시행되지 못한 채 폐지된 금투세는 조세정책에 대한 정부의 일관성과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례가 됐다. 정책 신뢰성 문제가 심각하다.
결론: 정치적 현실이 정책적 합리성을 짓밟았다
금융투자소득세 논란은 정책적 합리성과 정치적 현실이 충돌한 대표적 사례다. 전문가들이 지지하고 조세정의 원칙에 부합하는 정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투자자들의 강력한 반발과 정치권의 선거를 의식한 판단이 결합되어 폐지로 이어졌다.
이제 행동해야 할 때다. 향후 자산 과세 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정치적 계산이 아닌 정책적 합리성에 기반한 세제 개편을 요구하라. 지금 당장.